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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을 빛낸 인물 손양원목사 그의 애국혼과 숭고한 박애 정신을 기리는 애국지사 손양원 기념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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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을 빛낸 인물 손양원목사 그의 애국혼과 숭고한 박애 정신을 기리는 애국지사 손양원 기념관 개관

함안 기독교유적지 손양원목사 어릴적 신앙을 키운 109년 역사 칠원교회 그리고 손양원목사 생가


함안을 빛낸 손양원 목사의 애국혼과 숭고한 박애 정신을 기리는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이 칠원읍 덕산 4길 생가터에서 개관하였습니다.

손양원 기념관은 2014년 4월 착공해 부지 3656㎡에 전시장, 기록보관실, 영상실, 사무실 등을 갖춘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손양원목사 그는 누구인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영화로 눈과 귀에 익숙한 인물입니다!

손양원목사는 1902년 6월 3일 함안군 칠원 구성리에서 태어나 칠원교회와 칠원보통공립학교(현 칠원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어린 시절부터 신앙을 키웠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평양신학교를 졸업(1936년 36세) 한 후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애양원으로 부임(1937년 8월 37세) 합니다.

그는 먼저 한센병 환자들과 일반인 사이에 세워져있던 철조망을 제거하는데, 그들과의 담을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들에게도 직접 찾아가 그들의 두 손을 따뜻하게 잡습니다. 이곳은 같은 환자라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인데 말입니다.



신사불참배운동의 거센 불길, 그리고 신사참배 강요를 옥고와 수난으로 답하다.

1938년 이후 한국교회가 신사참배에 굴복하자, 이에 반대하는 교역자와 신도들은 서로 연대를 맺고 조직적, 집단적 저항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 및 이를 결의, 실행하는 제도권 교회를 강하게 비판하며 신자들을 대상으로 신사불참배를 권유하고, 거부자들간의 결속을 강화하는 운동을 폅니다. 신사불참배운동의 중심인물은 평안남도의 주기철, 평안북도의 이기선, 경상남도의 한상룡, 이인재, 주남선, 전라남도의 손양원, 함경남도의 이계실, 만주 지역의 박의흠, 김형락, 김윤섭 등이 활약합니다. 특히 1940년 3월경의 안동화합에서는 신사참배를 죽어도 반대할 것, 신사참배를 하는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지 말것, 세속화 되어 신사참배를 하는 현교회에 절대 출입하지 말 것, 신사불참배동지들끼리 가정예배를 드릴것, 신앙 동지들을 확보해 신령한 교회 출현의 소지를 육성할 것 등을 협의, 결정하고 각 지역에서 이러한 운동을 확산시킵니다.



신사불참배로 투옥된 이는 대략 2,000여명에 이르고, 200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순교자만도 50여명에 이르는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사불참배운동은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하나님외에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으며, 당시 일제의 억압과 회유에 굴복해 변졀된 제도권의 사회와 교회의 변질을 경고하면서 투쟁을 벌여 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일제에 항거한 '신사참배거부운동'과 순천 노회의 '원탁회 사건'으로 교회 장로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연행(1939년) 되어 6년간 옥살이를 하다 광복을 맞아 애양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1946년)을 받고, 그 후 여순 반란 사건(1948년) 때 순천 사범학교와, 순천 중학교에 다니던 두 아들을 잃게 됩니다. 자신은 한국전쟁 중 여수까지 내려온 공산군에 의해  여수 근교 미평 과수원에서 순교(1950년 9월 48세) 하셨습니다.



손양권 목사의 남긴 글

9가지 감사(손양원목사님이 두아들을 잃고 하나님께 드렸던 감사 기도)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게 하심 감사.

2.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심 감사.

3. 3남 3녀 중에서 가장 귀한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하심 감사.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함을 감사.

5. 예수 믿고 외석 종신해도 복인데 전도하다 총살 순교함을 감사.

6. 미국 가려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감을 감사.

7.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게 한 사랑을 감사.

8.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서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믿으면서 감사.

9.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칠원 교회

1906년 설립된 칠원 교회는 2015년 현재 109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의 모교회인 칠원 교회는 2008년에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을 위해 당시 개 사육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생가터(400평)를 매입하였습니다.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가 기념관 건립에 참여하게 되었고, 함안군의 지원으로 기념관 건립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애국지사 손양원기념관 옆으로 신축한 칠원교회의 모습

현재의 교회가 시장통로안에 있어 출입에 많은 애로가 있었는데, 이번 예배당신축으로 인하여 교통이 편리하여 졌으며,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의 장소로도 활용할수 있어앞으로의 활동에 기대가 됩니다.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는 2010년 1월 17일에 설립되었고, 2011년 2월에 국가보훈처로부터 사단법인 인가(№2011-101)를 득하였습니다. 그리고 2013년 4월에 손양원 생가 복원  기념관 건립본부(본부장 박시영, 경남성시화 운동 사무총장)가 조직되었고, 건립본부의 주도로 공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1년 6개월 만에 준공하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 생가

손양원목사의 부친 손종일장로의 회갑을 기념하여 생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손양원 기념관은 유품보다는 건물자체의 디자인을 통하여 손양원목사의 삶을 조명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애국지사 손양원기념관의 글씨가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공간구성은 하늘사랑, 인간사랑, 나라사랑 이렇게 3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상관의 모습입니다.



인간사랑 공간입니다.

네 이웃을 내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곳은 손양원목사님께서 여수애양원에서 한센인을 돌보시는 모습입니다.



백범 김구와 손양원목사의 인연
1949년 4월 17일자 (서울신문)에 쓴 칼럽에서 손목사를 칭송합니다.
여수 교회 손양원목사의 사적을 듣고서 나는 그분의 종교가다운 온정과 자비심에 탄복하고 경의를 표했다. 공산당을 진정으로 이긴 사람은 손양원목사이다. 그는 무고한 동포들을 학살한 좌익 소아병자를 완전히 고쳐서 선량한 인간이 되게 하였다. 자기의 사랑하는 두아들을 학살한 좌익학생에게 온정과 원호의 손을 쥐어 주면서 회유시킴으로서 다수의 좌익사람들로 하여금 잔인한 파괴행동을 버리고 순수한 인간성을 회복하게 하였다. 이 땅의 정치가들에게도 손목사와 같은 아량과 표용성과 수완이 있다면 공산주의도 이길수 있고, 남북통일도 실현할수 있을것이다. 정치는 감정을 삼가고 이지를 발희해야 한다.  

고난의길을 통과하면 걸을때 마다 가슴을 울리는 문구가 나타나며 점점 밝은 빛으로 나아감을 알수 있습니다.


삼부자 관모형위에 쓰여진 기도문.


하늘의길에서 바라본 손양원목사의 글귀들




이곳을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무자비한 일제 강점을 

믿음으로 저항하며

삼일독립만세를 일으키신

손종일장로님의 집입니다

함안의 독립 애국자

칠원교회 신앙의 아버지


그 아버지에 그 아드님

손양원목사님은

신사참배 반대하다 옥살이로 부서지고

공산당에게 동인 동신 두 아들과 

자신마저 순교당한 일가족


애양원 한센병자들을 위해 바친 일생

그들이 슬프면 눈물로 흐르고

그들이 헐벗으면 한 벌 옷이 되어 입히고

그들이 맨발이면 한 컬레 신발이 되시고 

그들이 피고름 아프면 입으로 빨아내시고

두 아들 살해한 안재선 양자로 삼으신 

사랑의 원자탄 애양원의 작은 예수


이 곳을 그냥 지나가지 마십시오


신을 벗고 

순교자들의 신앙을 생각하며

당신과 당신자녀들을 위해 우십시오


고운 "순교자의 생가 앞에서"  


이번에 개관한 애국지사 산돌 손양원 목사 기념관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손양원 목사의 애국혼과 숭고한 박애 정신의 배움터로, 일반 국민에게는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되새기는 순교신앙의 성지가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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